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구려-당 전쟁 (문단 편집) === 결과 === 645년의 대패 이후 당나라는 고구려에 대해 정면대결을 피하고, 소모전을 통한 국력 고갈, 인접국 공략을 통한 고구려의 고립을 시도하여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육상에서의 고구려의 강력한 군사력을 회피한 '''평양 직공'''으로 결정타를 노린다. 하지만 650년대 고구려는 전장을 초원지대로 옮김으로써 소모전의 효과를 경감하였고, 여전히 백제 부흥군과 왜는 고구려 남쪽의 [[신라#s-13|신라군]]을, 거란과 해, 철륵은 고구려 북쪽의 당나라군의 전력을 반감시켰다. 성과가 없진 않았으나 고구려도 나름대로 와해책을 내놓아 결정타는 타개한 것이다. 당나라가 이 전쟁에서 잃은 장수들은 650년대에 제국의 국방을 책임지던 인사들이었다. '''임아상'''[* 패강도행군 총관. 662년 초 [[고구려#s-7|고구려군]]과 전투 중 진중에서 사망 ][* 당의 이름난 재상인데도 별도의 열전이 없다.]은 서돌궐 평정으로 이름을 쌓아 병부상서의 지위에 오른 군부의 수장이었으며, '''방효태''',[* 옥저도행군 총관이며 사수 전투에서 전사.] '''정명진'''[* 누방도행군 총관이며 임아상처럼 662년 초 고구려와 전투 중 진중에서 사망이 확인된다. 방효태와 정명진 모두 1차 고구려-당 전쟁 때 참전한 이력이 있다. 정명진의 부장 양사선의 묘지명을 확인해보면[* 누방도행군이 전쟁을 치루는데, 큰 봉황새가 이지러지기 시작하여 하늘을 날던 날개가 떨어져 드리우고, 큰 고기가 길을 잃고 헤메어 큰 파도에 비늘이 떨어지는 등의 사건이 벌어져서 58세의 나이인 661년 10월 16일에 양사선이 군대에서 죽어서 묻혔다. ] 정황상 누방도행군 역시 [[고구려#s-7|고구려군]]과의 전투에서 도행군이 와해될 정도의 패배를 입은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 양사선의 묘지에 보면, 신성을 공략했으나 아무 기록이 없다. 정황상 신성 공략에 실패한 듯. 이후 글필하력의 요동도행군, [[소사업]]의 부여도행군이철륵 반군 진압을 위해 철군할 때 정명진의 루방도행군은 고구려군의 집중 공격을 받고 정명진과 양사선 모두 난전 중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역시 당나라의 국방을 맡아서 책임지던 장수들이었다. [[당나라군|당군]]의 피해를 종합하자면 '''6개 도행군 중 1개 도행군이 지휘부와 함께 몰살당하고, 2개의 도행군은 지휘부가 전쟁 중 사망하였으며, 도행군은 와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알기 쉽게 비교하자면 수나라 30만 대군이 전몰할 때도 지휘부가 이 정도로 타격을 입지 않았다.] 또한 원정과 연관된 반란까지 진압하고, 이러한 여파로 당 건국 이후 오랫동안 정국을 지배하던 [[무천진 관롱집단]]은 정치적 지배권을 상당수 상실했으며, 중소 지주층과 손을 잡은 [[측천무후]]와의 정치 투쟁에서 패배하여 실권을 상실하게 된다.[* [[장손무기]], [[저수량]] 등 태종 대의 중신들이 이때 제거된다.] 이러한 당 내의 정치 투쟁이 진행되면서 아직 방어할 힘이 넉넉히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된 고구려를 재침공할 엄두가 안나게 된 당은 한동안 고구려에 대한 [[소모전]]까지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며 백제 방면의 웅진 도독부에도 역시 철수를 명한다.[* 웅진 도독부 측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신라 측에서 끈 떨어진 도독부를 거둬줌으로써 간판은 유지한다. 이 결정은 수년 뒤 고구려에 치명적인 내분이 일어난 시점에 신의 한 수로 작용한다.] 대승을 거두었지만 고구려로서도 마냥 기뻐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내몽골 초원지대의 지배는 흔들리고 있었으며, 남방에서는 신라의 뒤통수를 막아줄 백제가 멸망했다. 이때는 부흥군과 왜가 신라를 막아줬지만 이듬해에는 [[백강 전투|백제와 왜가 나당 연합군에 작살나버리니]] 이후 신라의 공격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고, 전쟁 확대를 피하며 당나라의 봉선 의식에 태자를 보내는 등 기존에 상상하기 힘들었던 수위의 친선 의사를 표한다. 신라의 돌파를 막지 못한 점, 제대로 추격하지 못한 점 등은 고구려도 오랜 전쟁으로 지쳤다는 징후로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